본문 바로가기
스포츠

마라톤 42.195km 거리가 확정된 역사적 배경: 우연과 왕실, 그리고 표준화의 여정

by 알럽 2026. 7. 18.

마라톤이라는 종목을 상징하는 숫자는 42.195km이다. 10km나 42km처럼 떨어지는 값이 아니라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 이어지는 이 어정쩡한 수치는, 스포츠 규정이라기보다는 역사적 우연의 산물에 가깝다. 이 글은 고대 그리스의 전설에서 출발해 근대 올림픽의 부활, 1908년 런던의 한 대회, 그리고 1921년 국제 육상 기구의 공식 결정에 이르기까지, 마라톤 거리가 오늘날의 형태로 굳어진 과정을 사실에 근거해 정리한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숫자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신화와 왕실의 요구, 그리고 국제 스포츠의 표준화 욕구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 마라톤의 기원: 마라톤 전투와 전령의 전설

 

마라톤이라는 명칭은 기원전 490년 그리스와 페르시아가 맞붙은 마라톤 전투에서 유래한다. 널리 알려진 전설에 따르면, 아테네군이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거둔 뒤 한 전령이 승전 소식을 알리기 위해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까지 달려갔고, 소식을 전한 직후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진다. 이 전령의 이름은 통상 페이디피데스로 알려져 있으나, 고대 문헌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다만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로 확정된 것이 아니라 후대에 문학적으로 각색된 전승에 가깝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들이 남긴 기록 사이에도 세부 내용에 차이가 있으며, 전령이 실제로 달린 거리나 경로에 대해서도 학자마다 견해가 갈린다. 그럼에도 이 전설은 인간의 극한 지구력과 헌신을 상징하는 서사로서 오랫동안 힘을 발휘했고, 근대에 이르러 하나의 스포츠 종목으로 부활하는 상상력의 토대가 되었다.

 

 

 

▍ 근대 올림픽의 부활과 초기 거리의 유동성

 

마라톤이 실제 경기 종목으로 등장한 것은 1896년 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근대 올림픽에서였다. 이 종목은 프랑스의 언어학자 미셸 브레알이 고대 전설에서 영감을 얻어 제안한 것으로 전해지며,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첫 대회의 코스는 실제 마라톤 지역에서 아테네 경기장까지 이어지는 공공 도로 위에 설정되었고, 그 거리는 대략 40km 안팎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요한 점은 이 시기에 마라톤의 거리가 오늘날처럼 정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초기 자료에는 마라톤 거리가 48km 또는 42km 등으로 서로 다르게 기재된 문서가 존재하며, 실제 대회마다 코스의 사정에 따라 거리가 조금씩 달라졌다. 다시 말해 1896년 이후 상당 기간 동안 마라톤은 "약 40km 내외의 장거리 도로 경주"였을 뿐, 하나의 고정된 수치로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거리의 표준화는 훗날의 과제로 남아 있었다.

 

 

 

 

 

 

▍ 1908년 런던 올림픽: 42.195km의 탄생

 

오늘날의 42.195km라는 수치가 처음 등장한 무대는 1908년 런던 올림픽이다. 당초 조직위원회는 마라톤 거리를 약 25마일, 즉 40km 안팎으로 계획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실제 코스가 확정되는 과정에서 여러 사정이 겹치며 최종 거리가 26마일 385야드,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42.195km로 결정되었다.

 

 

 

▍ 윈저성에서 화이트시티 경기장까지

 

1908년 대회의 코스는 윈저성 부근을 출발해 런던의 화이트시티 경기장에서 마무리되도록 설계되었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에 따르면, 왕실 인사들이 출발과 결승 장면을 좋은 위치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코스가 조정되면서 몇백 미터가 더해졌다고 전해진다. 출발 지점이 왕실 가족이 지켜보기 좋은 위치로 옮겨지고, 결승선 또한 경기장 내 로열 박스 앞에 맞추어지면서 트랙 위에서 385야드를 더 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일화의 세부 내용은 자료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 어떤 기록은 출발선 이동을 요청한 인물로 왕세자비를 지목하고, 결승선 조정을 왕비의 요청과 연결한다. 또 다른 자료는 국왕의 요구를 언급하기도 한다. 확실한 것은 이 거리가 순수하게 스포츠적 논리에 따라 정해진 것이 아니라, 당시의 개최 여건과 의전적 고려가 반영된 결과였다는 점이다. 즉 42.195km는 계산된 최적 거리가 아니라 상황이 만들어낸 우연에 가까운 수치였다.

 

 

 

▍ 도란도 피에트리의 드라마

 

1908년 마라톤이 역사에 강하게 각인된 데에는 거리뿐 아니라 결승 장면의 극적인 상황도 한몫했다. 이탈리아 선수 도란도 피에트리는 선두로 경기장에 진입했으나 극심한 탈진 상태로 여러 차례 쓰러졌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결승선을 통과했다. 결국 그는 규정 위반으로 실격 처리되었고 우승은 미국의 조니 헤이스에게 돌아갔다. 이 사건은 당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마라톤이라는 종목과 이 거리를 대중의 기억 속에 강렬하게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 표준화 이전의 혼란: 대회마다 달랐던 거리

 

1908년에 42.195km가 등장했다고 해서 곧바로 이 거리가 세계 표준이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후 몇 차례의 올림픽에서도 마라톤 거리는 대회마다 다르게 설정되었다. 초기 올림픽의 마라톤 거리를 개략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으며, 각 수치는 자료에 따라 근소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근대 올림픽 초기에는 마라톤 거리가 40km에서 42km대 후반까지 폭넓게 변동했다. 이는 코스 사정, 개최 도시의 지리적 여건, 그리고 국제적으로 통일된 규정이 부재했던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이러한 불일치는 기록 비교를 어렵게 만들었고, 국제 대회가 늘어날수록 통일된 기준의 필요성이 커졌다.

 

 

 

▍ 1921년 국제 육상 기구의 공식 표준화

 

마라톤 거리가 하나의 값으로 확정된 결정적 시점은 1921년이다. 당시 새롭게 조직된 국제아마추어육상연맹(IAAF, 현재의 월드애슬레틱스)은 마라톤의 공식 거리를 42.195km로 규정했다. 여러 후보 가운데 1908년 런던 대회에서 사용된 거리가 채택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왜 하필 이 거리가 선택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공식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관련 회의록에는 그 이유가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 선택의 배경에 대한 설명은 상당 부분 추정에 의존한다. 다만 여러 연구자들은 1908년 런던 대회가 남긴 상징성, 그리고 이후 그 거리로 매년 열린 폴리테크닉 마라톤 등을 통해 42.195km가 이미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었다는 점을 주요 배경으로 지목한다. 표준을 정하는 과정에서 원점 회귀를 주장하며 1896년의 거리에 가깝게 되돌리자는 의견이나 42km로 딱 떨어지게 하자는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결국 런던의 거리가 채택되었다.

 

이 규정은 1924년 파리 올림픽부터 일관되게 적용되었고, 그 이후로 마라톤의 공식 거리는 변하지 않았다. 오늘날 공인 마라톤 코스는 42.195km를 기준으로 정밀하게 측정되며, 측정 오차로 인해 규정 거리보다 짧아지는 일을 막기 위해 코스 측정 시 미세한 여유를 두는 방식이 국제적으로 통용된다.

 

 

 

 

 

 

▍ 42.195km가 오늘날 갖는 의미와 함의

 

42.195km라는 표준이 확립된 것은 단순한 숫자의 통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첫째, 거리의 표준화는 공정한 경쟁의 전제 조건이다. 도쿄에서 뛰든 베를린이나 뉴욕에서 뛰든 동일한 거리를 달려야 기록이 서로 비교 가능해지고, 세계 기록이나 개인 최고 기록이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있다. 표준 거리가 없다면 어떤 대회의 기록이 더 뛰어난지 판단할 근거 자체가 흔들린다.

 

둘째, 표준화는 스포츠의 국제적 제도화 과정을 상징한다. 마라톤 거리를 하나로 묶은 1921년의 결정은 육상이라는 종목이 개별 대회의 관행에서 벗어나 국제 기구의 통일된 규칙 아래 놓이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는 훈련 계획, 페이스 배분, 기록 관리 등 현대 마라톤 문화 전반이 하나의 공통된 기준 위에서 발전할 수 있도록 한 토대가 되었다.

 

셋째, 이 숫자에는 역사적 서사가 응축되어 있다. 고대 전설에서 비롯된 상징성, 근대 올림픽의 부활, 왕실의 요구가 얽힌 우연한 코스 조정, 그리고 국제 기구의 표준화 결정이 모두 42.195km라는 한 값에 담겨 있다. 오늘날의 러너가 이 거리를 완주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도전을 넘어, 100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형성된 하나의 문화적 관습에 참여하는 일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 결론

 

마라톤 42.195km는 처음부터 계획된 완결된 수치가 아니었다. 고대 마라톤 전투의 전설에서 출발한 이 종목은 1896년 근대 올림픽에서 부활한 뒤에도 오랫동안 대회마다 거리가 달랐고,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개최 여건과 의전적 고려가 겹치며 26마일 385야드라는 독특한 값이 등장했다. 이후 1921년 국제 육상 기구가 이 거리를 공식 표준으로 채택하면서 비로소 오늘날의 42.195km가 확정되었으며, 그 배경에는 명확히 기록되지 않은 부분과 여러 정황적 추정이 함께 존재한다.

 

결국 이 숫자는 우연과 상징, 그리고 표준화의 필요가 만나 굳어진 역사적 산물이다. 마라톤의 거리에 담긴 이 같은 맥락을 이해하면, 단순한 완주 기록을 넘어 이 종목이 왜 오랫동안 인간 지구력의 대표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는지도 더 깊이 헤아릴 수 있다. 마라톤의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각 시대의 올림픽 코스 변화나 초기 대회의 기록을 차분히 살펴보는 것도 이 종목을 이해하는 유익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